성경을 보면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취지의 구절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이라는 신과 재물이라는 현실의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으로 다분히 양자택일적인 입장입니다.그러나 현실 세계는 흑백 논리나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99%입니다. 나에게 착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악할 수 있고, 내가 착하다고 생각했던 상사가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직 구성원으로써 사람들은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직업 현장에서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은 관리자와 감독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합니다. 또한, 서로 다른 예산 기준의 적용을 받는 조직에서 각 부서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기준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판매 및 영업부서의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제품을 판매했느냐가 인센티브 책정의 기준인 반면, 감사 부서의 사람에게는 제품 판매에 있어 당국이나 사내의 규정을 어긴 사례를 얼마나 잡아냈는지가 인센티브 책정의 기준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직 내에서 상충되는 가치나 목표를 추구해야 할 경우, 개인은 어느 쪽에 속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학계의 상황
학계에서도 연구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의 경우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대학 실험실 또는 의료센터 등에서 핵심 정책결정자는 주로 기금 지원기관이나 산학 협력위원회의 관계사일 경우가 많습니다. 즉, 자금을 지원하는 측이 소위 말하는 갑이 되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학계의 연구 특성상 분야별로 협업을 하는 상황이 많은데, 연구 기금을 지원 받는 각 연구 부서들간에 여러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 정신을 유지하기
기관이나 학교에 소속된 연구자나 교직원이라면, 위로는 직속 상사(부문별 상사)와 기관의 장급 관리자가 있을 것입니다. 연구 사업단에 소속되었다면 사업단장과 연구 기금 지원처의 상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조직의 장은 당신의 직속 상관보다 더 높은 직급이지만 실제 업무에 관한 평가를 하고 급여 결정에 관여하는 것은 직속 상관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서구의 조직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업무를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을 고려해야 합니다.
1) 모든 프로젝트의 초기에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기대치 설정
조직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합니다. 가급적 직속 상관의 지시를 우선하여 업무를 추진하되, 직속 상관이 허락하는 선에서 기관장의 명령에 따른다는 식입니다. 또한 자금 지원처나 사업단 측의 기대 목표 수준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초기에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 상황 변화 시, 즉각적이고 빈번한 의사소통이 핵심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연구 결과나 자금 집행 등에 관련하여 변수는 수시로 발생합니다. 이 때마다 최대한 신속히 상사 및 관련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하여 자신의 입장을 알리고 상대의 입장에 따라 최대한 자신의 포지션을 수정 또는 설득하여 오해가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상사도 합리적이고 정중한 의견 전달은 충분히 수렴 가능할 것이고, 오히려 이러한 의사소통 과정에서 상사의 입장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 시야를 확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3) 관리자이자 감독자이기도 한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에서 설명한대로, 상사는 때로 관리자와 감독자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관리만 하던 상사가 인사 또는 예산 문제와 관련하여 추가적인 요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상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뇌물 등으로 환심을 사라는 말이 아니라, 상사의 다양한 역할 추구가 자신의 업무 및 역할과도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적극적 자세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4) 한 주인을 섬기기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결국 충돌과 정치적인 악화를 낳을 뿐입니다. 즉 비현실적입니다. 한 주인을 섬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상사 간에 충돌이 있을 때 자신이 속한 상사를 따르는 것이 올바르며 합리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득이하게 그리고 높은 확률로 장래에 발생 가능한 이해관계의 충돌 상황이라면, 어차피 중립은 비현실적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속한 직속상사와 관련된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많습니다.
위의 경우를 살펴 보면, 조직에 속한 연구자/학자에게도 정치적인 기술이나 처세술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연구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바램을 표현하는 것과 불가능한 면을 인식하는 것 간에 조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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