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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소식

미국 양질연구장려법(High Quality Research Act)의 목적은?


최근 들어 연구에서 질적인 측면보다 양적 요소가 더 중시되는 상황입니다. 테뉴어를 받지 못한 학자들은 “출판 아니면 도태”의 학계 현실 속에서 더 심한 압박을 받고 있어 결국 양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이를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고, 2013년 4월에는 미국 하원 ‘과학, 우주 및 기술 위원회 (House Committee on Science, Space and Technology)’의 의장인 라마 스미스(Lamar Smith) 공화당 의원이 양질연구장려법(High Quality Research Act)을 제안했습니다. 

양질연구장려법(High Quality Research Act)이란?
양질연구장려법(High Quality Research Act)에 따르면, 미국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장은 모든 내부 피어 리뷰 기준에 더해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했는지를 인증해야 합니다. 
1) 본 연구는 과학의 발전을 통해 미국의 국민 보건, 번영, 복지를 증진시키고, 국가안보를 보장함에 있어 도움을 줍니다.
2) 본 연구는 현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을 하는 최고 퀄리티의 연구입니다.
3) 본 연구는 본 미국국립과학재단이나 기타 연방 과학기관에 의해 투자되는 다른 연구 프로젝트와 중복되지 않습니다.

기초 연구를 대상으로 한 법안?
위 법안의 본래 취지는 질적 측면을 강조하는 기초 연구를 장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의 구절에 따르면, 기초 연구보다 응용 연구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보일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성공적인 결과에 최고의 기회를 부여하기로 하는 방침은 현재의 상업적 성과 지표 측정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기초 과학 연구자들은 NSF 외에 주요 연구비 지원기관인 미국 국립보건원에 대한 16억 달러 예산 삭감(시퀘스터) 프로그램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금번 양질연구장려법으로 인해 연구비가 응용 연구 쪽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기초 과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 풍토는 덧셈 뺄셈을 익히지 않고 복잡한 미적분을 푸는 상황”이라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해의 부족
위 법안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연구 프로젝트가 “중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구절입니다. 이는 응용 연구를 협업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즉, 현재와 같이 여러 연구 팀들이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서로 협업하는 형태의 문화를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구 현장에 대한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연구자의 참여가 미흡한 법안으로 인해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미국 기초 과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현재 미국은 우주과학 기초 연구 등에 적지 않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고 기초 과학 분야 세계 최강국들 중 하나이지만, 미국 내에서도 기초 과학의 위축은 분명한 흐름이라고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초 과학 투자가 감소하는 것은 공통된 현상 같습니다.

피어리뷰보다 폴리티컬 리뷰?
이 법의 제안자인 스미스 의원은 “질(quality)”과 “지적 기여(intellectual merit)”라는 문구를 분명히 규정할 것을 요청했지만, 미국 국립과학재단 측은 피어 리뷰 과정의 기밀성(confidentiality)을 침해할 수 있다며 법안 초안에 반대했습니다. 또한 많은 연구자들은 양질연구장려법으로 인해 자신의 연구 지원금의 규모가 감소할 것을 우려하여, 이 법안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 측은 납세자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이므로 정치적 입장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과학 혁신을 가져올 연구에 대한 판단을 정치권에 맡기는 것은 위험하며,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